폭설로 인한 통제로 루마니아의 여러 곳을 포기해야했던 우리는 세르비아를 멈추지 않고 통과했어요.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둘 다 시간에 쫓겨 보는 것보단 한 나라를 조금 더 자세히 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루마니아와 세르비아 사이에는 강이 하나 흘렀는데 강가에 서면 서로의 나라를 들여다 볼 수 있었어요.

넓은 다리 하나로 양 국가가 이어져 있어 국경이 아닌 도시의 경계 같았어요. 여러 국경을 지나고 다른 나라에서 그 나라의 것이 아닌 차량들을 종종 마주하다보니 우리나라가 참 고립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섬 나라가 아님에도 우리는 육로로 국경 통과가 불가능 하니까요.
배가 아닌 땅으로 우리가 다른 나라를 향하는 날이 올까요? 여행을 다녀보니 그 점이 참 안타깝고 아쉽더군요. 섬이 아니지만 섬과 같아, 육로로 국경 통과해 본 적이 없었기에 첫 육로 국경을 넘을 때에는 겁도 나고 낯설기도 했어요. 이제야 조금 익숙해진 이 과정이 언젠가 다시 낯설어질 생각을 하니 차창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크로아티아 가득한 봄 내음, 마음에도 번지다”
루마니아에서 시작된 봄 기운은 크로아티아에 도착하자 완연한 봄 기운을 띄었어요. 꽃이 피는 따뜻한 계절이 되니 우리의 마음도 피어나는 듯 했구요. 러시아, 몽골에서 투닥거리며 자주 싸웠다면 크로아티아에서는 따뜻해진 날씨, 그동안의 경험으로 각자의 역할이 다시금 자리를 잡았습니다. 여행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이 편해지니 자연스럽게 우리다운 즐거운 여행을 해나갈 수 있었어요. 크로아티아에 입성하자마자 우리는 자그레브로 향했어요. 유럽의 물가와 높은 주차 난이도를 실감하며 자그레브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움직였죠.
오래되고 낡은 건물들과 현대 건물들이 얽혀있는 자그레브를 구석구석 돌아다녔어요. 따뜻해진 날씨에 누그러진 우리 마음 때문이었을까요? 지나온 다른 나라, 도시보다 더 사랑스럽게 보였어요. 자그레브의 명소 뿐 아니라 마음이 이끌리는대로 들어간 골목, 빈티지 가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눈에 새겼어요. 우리는 그렇게 며칠을 더 머물렀답니다. 자그레브의 주말은 어떤지 궁금했거든요. 플리마켓 덕후들이 주말에 열리는 플리마켓을 빼먹으면 섭섭하지 않겠어요?
자그레브의 플리마켓에는 여행객들이 잔뜩 있었고, 각양각색의 표정으로 손님을 기다리는 판매자들이 있었어요.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플리마켓이었나봐요. 볼거리는 많았지만, 현지의 느낌을 좀 더 느끼고 싶었던 우리는 살짝 실망한 마음을 안고 구경했어요.
다음 여행지인 모토분으로 향하는 길, 우연히 만난 페스티벌 현장.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나와 함께 즐기고 있었고, 우리는 슬그머니 원래 그 축제의 일부인 마냥 끼어들었어요. 축제를 보러 온 외지인은 없었고, 마을 사람들끼리 즐기는 축제였음에도 정성스럽게 준비한 의상과 한껏 빠져들어 즐기는 모습들을 보니 덩달아 우리도 즐거워질 수 밖에요. 즐거운 마음으로 도착한 모토분은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골목이 매력인 도시였어요. 도시라 부르기엔 아주 작은 마을.
“5성 호텔보다 값진, 5억성 아래 무쏘 별장”
성 꼭대기에 올라 주위를 둘러보고는 언덕 중턱에 있는 와인 양조장에서 멋진 풍경을 안주 삼아 한 잔 마셨어요. 고가의 와인도 화려한 인테리어도 아닌 그저 뒷마당 같은 벤치였지만, 둘이 함께 앉아 들이키는 와인은 우리가 지금껏 마셨던 와인 중 가장 맛있었던 것 같아요. 이곳의 매력을 충분히 느끼고 싶어 2박 3일 동안 모토분이 잘 보이는 곳을 찾아 하루하루를 보냈어요. 해가 지고, 별이 뜨는 모습을 내가 원하는 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자동차 여행의 장점이 아닐까 생각해요.
크로아티아에는 섬이 꽤 많은데, 우리는 그 중 KRK섬에 먼저 방문하기로 했어요. 육지와 연결된 다리가 있어 배를 타지 않고도 섬을 드나들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섬은 꽤나 커서, 모두 돌아볼 수는 없었지만 우리가 가던 길 위에 올리브나무가 많았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작은 항구 마을과 요트들. 한적하고 고요한 이 섬, 우리 둘만 있을 수 있는 버려진 선착장에서 여행 중 최고의 노을을 만났고 모래알처럼 쏟아지는 별도 볼 수 있었죠.

남자친구는 이 날 밤을 이렇게 표현했어요, 5성급 호텔에서는 잘 수 없지만 5억성 아래에서 잘 수 있어 행복한 여행이라고. 맞아요, 침대보다 좁고 불편한 잠자리에서 지내고 현지의 맛있는 음식을 즐기지는 못하지만 마을이 훤히 내다보이는 우리만의 호텔을 만들 수 있었고, 은하수라는 영화를 보는 우리만의 전용 극장이 있었어요.
“남쪽, 크로아티아 더 깊은 곳으로”
KRK 섬을 지나 크로아티아의 작은 로마로 불리는 폴라를 거쳐 다시 남쪽으로 내려갔어요. 다음 목적지는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유명한 곳, 플리트비체. 악마의 호수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는 플리트비체는 유네스코에 등록된 곳이며 아름다운 폭포가 인상적인 곳이었어요. 폭포가 높거나 크지 않았지만, 에메랄드 빛 빛나는 물과 이끼와 풀, 나무가 어우러진 그 광경은 아름다울 수 밖에 없었죠.

우리가 조금 더 따뜻해진 후에 왔더라면, 조금 더 푸르름이 농익을 때 왔더라면 더욱 아름다웠으리라는 생각을 해요. 눈으로 인해 일부 구간을 보지 못한 것도 조금 아쉬웠지만, 사람이 붐비지 않아 이 넓은 곳을 여유롭게 온전히 눈에 담을 수 있다는 점은 좋았어요. 크로아티아를 돌다보면 플리트비체처럼 에메랄드 빛 물과 나무들 사이 이끼가 낀 신비로운 요정의 숲 같은 곳을 가끔 만나게 돼요. 그럴 때마다 동화 속 배경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두근거렸어요. 크로아티아를 간다면 꼭 국도로, 작은 도로로 다니시길 추천해요! 기대하지 못했던 곳에서 멋진 장면을 만날 수 있거든요.
크로아티아의 주황색 지붕은 마치 마스코트 같아요. 해안도로를 따라가며 만나는 마을에서 주황색 지붕을 빠지지 않고 볼 수 있었어요. 큰 도시든 작은 도시든 주황색 지붕을 볼 수 있었지만 소도시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주황색 지붕이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 같아요. 시베닉도 그런 도시였어요.
바다 오르골이 귀를 즐겁게 하고 여유로운 사람들이 노을을 즐기는 자다르를 지나 도착한 시베닉은 해안의 작은 도시처럼 보였어요. 이곳에서 우리는 오랜만에 숙소를 방문했답니다. 밀린 빨래와 청소를 하곤 숙소 앞으로 펼쳐진 주황색 지붕들 위로 내리는 노을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했죠.
스플릿에서는 그 주황색 지붕 사이로 들어가 골목골목 헤집고 다녔어요. 해변에 가득한 야자수와 노천 카페에 앉아 햇빛을 즐기는 사람들. 크로아티아로 넘어오면서 부쩍 여유로운 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던 것 같아요. 날씨 탓도 있겠지만 유럽 특유의 테라스 사랑이 도드라지더군요.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테라스 가득히 햇빛을 즐기며 담소를 나누는 이들이 바쁘게 돌아가는 하루를 살아내는 한국 사람들과 대조되더라구요. 물론 이 곳에도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겠죠! 어쩌면 여행객이기에 이런 모습이 좀 더 눈에 띄는지도 모르겠어요.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고르자면 이 사진일거에요. Brac섬의 해변에서 아무도 없이 우리 둘만이 누웠던 침대는 평생을 살아도 못 이지을 추억이 될 거란 직감이 들었어요.
아름다운 해변에 우리 둘만이 남아 사진을 남기고 노을을 즐기고 식사도 했어요. 아름다운 곳에서 전세낸 것 마냥 단 둘이 풍경을 즐기며 노니고 있자니 신선이 따로 없더라구요. 게다가 연인과 함께라니, 행복하지 않을 수 없죠. 모두가 크로아티아의 베스트로 꼽는 두브로브니크에서도 우리의 ‘전세내기’는 계속되었어요.
무쏘와 함께하는 유라시아횡단기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