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쏘와 함께하는 유라시아 횡단기 3편 – 러시아 알혼섬에서의 짜릿한 추억

로드트립보단 시베리아 탈출기가 어울리는 러시아 하반기 몽골에서 다시 러시아로 향하는 길. 한번 지났던 국경이라고 친근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우리의 착각을 깨려는 듯 몽골로 넘어갈 때와 달리 러시아 국경에서 아주 호된 짐검사를 당했죠. 칼바람이 부는 새카만 국경. 우리는 꽁꽁 언 손을 비벼가며 짐을 하나씩 꺼내 열었습니다. 두 명의 살림살이는 생각보다 많았고, 영어가 통하지 않는 직원에게 물건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하니 시간이 더욱 길게 느껴졌습니다. 국경의 유일한 여행자였던 우리와 달리 다른 사람들은 짐 없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국경을 넘기를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언 손을 호호 불며 모든 짐을 검사하고 나니 벌써 새벽 1시. 밤이 깊어지니 러시아의 칼바람이 더 매서워졌고, 우리는 부랴부랴 자리를 잡고 잠을 청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살펴보니 차 바퀴에 누군가의 소변이 묻어 있었는데요. 이때부터 였을까요? 힘들다는 생각을 넘어 벗어나고 싶고, 질린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

 

 

“몽골에서 러시아로! 낯선 사람, 낯선 곳에서의 즐거움”

 

 

깐깐한 짐 검사로 국경에서 피폐한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 준 건 이반과 그의 가족들이었어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지인의 소개로 처음 만난 이반은 몽골과 가까운 울란우데에서 여행사 겸 가이드를 하고 있는 친구였습니다. 고비사막 자유여행에 대한 정보를 찾기 어려워 도움을 얻고자 만났죠. 고비사막에 대한 정보 뿐 아니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일정으로 여러 번 만나진 못했죠. 몽골에서 하루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그 인연으로 울란우데의 본가에 초대해주었습니다. 이반의 가족은 따뜻한 방까지 내주었고, 함께 저녁식사도 하고, 볼링도 치고, 술도 한 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다음 날, 이반의 따뜻한 하룻밤 배려를 연료 삼아 이르쿠츠크로 향했습니다. 이르쿠츠크는 바이칼 호수의 알혼섬으로 가기 위해 거쳐가는 도시입니다. 바이칼 호수에 대한 기대가 컸던 우리는 이르쿠츠크라는 도시에 대해서는 자세히 찾아보지 않았는데요. 특이하게도 그곳에는 ‘그린라인’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린라인은 일종의 ‘관광 가이드’라고 할 수 있어요. 이르쿠츠크 바닥에는 초록색 선과 화살표가 그려져 있고, 특정 장소에 도착하면 숫자도 쓰여 있습니다.

 

안내선을 따라가다 보면 이르쿠츠크의 주요 관광지와 유적 등을 돌아볼 수 있는 것이죠. 지리를 모르고, 길을 모르고, 정보를 몰라도 이 선을 따라 도착하면 장소에 대한 설명이 쓰인 표지판도 만날 수 있습니다.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성당들, 문학과 관련된 많은 장소, 그리고 이르쿠츠크 개선문. 그 외에도 그린라인을 따라 많은 장소들을 만났고, 그러다 보니 3시간이 훌쩍 넘었습니다. 이르쿠츠크에서 어떻게 여행할지 몰라 망설여진다면 이 초록선을 따라 다니시는 걸 추천해요.

 

이르쿠츠크 여행 중 가장 행복했던 장소는 선착장으로 이동 중 만난 벼룩시장이었습니다. 이곳 주민들이 온갖 물건을 들고 나와 팔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파닥거리며 돌아다녔죠. 벼룩시장에 눈이 팔린 덕분에 일정이 늦어진 우리는 겨우겨우 마지막 배를 타고 어둠이 내린 알혼섬에 도착했습니다.

 

 

“황홀하고 아찔했던 알혼섬의 기억”

 

 

덕분에 다른 데로 눈 돌릴 생각도 못하고 마을로 직행해 잠자리부터 탐색했는데요. 많은 곳을 살펴볼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밝은 가로등 아래 탁 트인 언덕에 급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탁트인 언덕 때문인지 호수에서 섬으로 바람이 아주 거세게 불었어요. 바람 때문에 흔들리는 차에 결국 새벽에 깬 우리는 차를 옮길 생각으로 문을 열었는데, 눈 앞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보랏빛, 분홍빛, 그 중간의 무언가로 물든 하늘은 숨막히게 아름다웠죠. 지쳐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사람, 혹은 이런 풍경으로 우리를 살살 달래주는 덕분에, ‘아직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여행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황홀한 일출을 맞으며 하루를 시작한 우리는 알혼섬을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헐벗은 나무, 얼음 덩어리가 떠다니는 호숫가. 호숫가를 따라 움직이며 알혼섬의 신성한 곳을들 살펴보기 시작했어요. 알혼섬은 부리야트 샤머니즘과 관련이 깊다고 하는데요. 칭기즈칸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이 곳은 겨울의 황량함 속에서도 성스러운 아우라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알혼섬을 구석구석 보고 싶었던 우리는 마을로 향했는데요. 무릎 높이에 눈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는 다행히 운이 좋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이전과 달리 달리는 차도 없고 마을도 없어 패닉 상태에 빠졌습니다.

 

 

당황한 우리는 일단 눈을 삽과 손으로 파냈습니다. 그리고는 우연히 발견한 솔잎과 솔방울을 바퀴 바닥에 깔아 마찰력을 만들었고, 트랙보드를 바퀴 밑에 최대한 끼워 넣고 조금씩 후진했습니다. 수없이 같은 작업을 반복한 뒤에야 차를 빼낼 수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누구의 도움도 없이 빠져나온 날이었죠. 얼마나 걸렸을까요? 해가 다 지고 어두컴컴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더 이상의 이동은 위험하다고 판단해. 근처 나무 밑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마을에서 머물 생각으로 식수 준비 안 했던 우리는 다음 날 아침 기상하자 마자 눈을 퍼와 끓여서 녹이고, 정수해서 먹었습니다. 로드트립을 기획할 때에 자동차 고장, 고립 등은 생각했지만 러시아 한복판에서 조난을 걱정할지는 몰랐습니다.

 

 

아침부터 생존게임을 찍은 우리는 가려던 마을은 포기하고 우연히 만난 투어 자동차를 따라 움직였어요. 투어차량이니 안전한 길을 다니리라 믿고서 말이죠. 하지만 호보이 곶을 다녀오니 투어 차량들은 이미 사라졌습니다. 우리가 마지막에 도착해서 다녀온 사이 출발한 것인데요. 부랴부랴 찾아 나섰지만 우리는 투어차량을 찾지 못했고 그때, 가파른 언덕에 나 있는 바퀴자국을 발견했습니다.

 

바퀴자국이 나 있는 곳은 우리의 다음 목적지인 사랑의 언덕과 방향이 비슷해 보였고, 우린 그 길을 따라 언덕을 올랐습니다. 하지만, 그 끝은 낭떠러지였던 것. 가파른 언덕이라 힘차게 오르고 있었던 우리는 갑자기 보이는 물에 놀라 급정거를 했습니다. 만약 브레이크에 문제가 있었거나 속도가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낭떠러지로 추락할 뻔한 상황이었죠. 그래서 고장 없이 튼튼한 무쏘에게 더 고마웠습니다.

 

전일 눈에 빠지는 사고에 이어 낭떠러지 추락 미수라니, 조용할 날이 없는 일정에 몸과 마음이 지치더군요. 알혼섬의 풍경이 아니었더라면, 진작 지쳐 나가 떨어졌지 않을까요. 그렇게 우리는 고비를 넘기고 남은 알혼섬 여행을 마무리하며 육지로 돌아왔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찾은 힐링”

 

 

러시아 시작부터 몽골을 지나 알혼섬까지. 처음에는 힘들어도 즐겁기만 했던 사건 사고가 극도의 추위와 엉망인 위생상태 등이 지속되면서 몸도 마음도 지쳤 갔습니다. 무엇보다 추위를 벗어나고 싶었던 우리는 모스크바까지 직진하기로 했어요. 이후로는 끝없는 질주의 연속. 마침 개인적으로 아는 지인이 모스크바에 머물고 있어 더 열심히 페달을 밟았습니다.

 

하루에 천 킬로미터 이상, 14시간씩 계속 달렸어요. 해 뜨기 전 어두컴컴할 때 일어나 달리기 시작해서 해가 지고 자동차가 드물어질 때까지, 시차가 하루에 1~2시간 씩 바뀌도록 달렸죠. 해가 떠 있는 시간 우리 시야에는 자작나무 숲과 그 사이를 달리는 차만이 있고, 해가 지면 사방이 캄캄한 도로 옆으로 주유소 불빛만이 을씨년스럽게 드문드문 보일 뿐이었습니다.

 

무쏘는 아무 사고도, 고장도 없이 꼬박 7일간 약 5,200km를 달렸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모스크바에서 우리는 지인을 만났습니다. 덕분에 혼잡한 모스크바에서 안전한 주차공간과 숙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모스크바는 무척 컸지만, 복잡한 도시이고 주차 확보가 어려웠기에 도보로 여행했습니다. 숙소 근처인 구 아르바트 거리부터 시작해 크렘린, 성바실리 성당 등 모스크바의 주요 볼거리를 누볐습니다. 다행히 우리가 모스크바를 여행하던 기간에는 날씨가 꽤나 따뜻해서, 아침부터 밤까지 크리스마스 준비가 한창인 모스크바를 돌아볼 수 있었죠.

 

 

모스크바는 지하철도 하나의 여행지가 될 수 있는데요. 세계의 깊은 지하철 중 하나인 러시아의 지하철은 역사마다 독특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입니다. 어떤 역은 박물관처럼, 어떤 역은 역사를, 어떤 역은 러시아의 유명 작가의 문학작품을 테마로 구성하는 등 각각의 역들이 재미와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도시의 건물과 지하철 등을 보면서 ‘모스크바는 러시아 건축역사를 다 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러시아인들의 꼿꼿하고 당당한 정신을 나타내는 듯 했습니다.

 

 

따뜻한 숙소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도시를 여행하다 보니 다시금 체력을 회복했고. 덕분에 오랜만에 자동차를 이끌고 근교로 나섰습니다. 이즈마일로프와 노보포드레즈코보에서 열리는 플리마켓 구경을 위해서 였죠. 이즈마일로프의 중고 시장은 관광지 바로 옆이어서 그런지 매우 상업화 되어 있었고, 그래서 주민들이 자기 물건 가지고 나와서 파는 곳보다는 물건을 전문적으로 수집해서 파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저희는 그래서 노보포드레즈코보가 더 재미있었답니다. 엄청난 면적에 걸쳐 지역주민들이 판을 벌여 놓고 물건을 팔고 있는 광경을 보니 신이 났고, 우리는 몇 시간을 더 헤맸습니다. 플리마켓에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만나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이곳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매력을 느꼈습니다.

 

쉬엄쉬엄 보고 다 돌아보지는 못했던 모스크바였지만, 아쉬운 점 남겨두고 떠나야 다음에 또 다시 오겠죠? 지나친 많은 도시, 도시 안에서도 다 보지 못한 아쉬움을 조금씩 남기고 저희는 우크라이나로 향했습니다.

 

 

무쏘와 함께하는 유라시아횡단기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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