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쏘와 함께하는 유라시아 횡단기 1편 – 여행의 시작, 러시아

“운명처럼 만난 쌍용자동차의 무쏘, 그리고 여행의 시작”

 

 

그 여름, 무쏘를 만난 건 운명이었습니다.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던 2016년 6월, 우리는 한정된 예산에 맞으면서도 여행에 적합한 차를 고민하고 있었는데요. 오프로드에 잘 견디고 두 사람이 누울 공간이 있는 차, 그렇지만 너무 크지 않으며 해외에서도 수리가 용이한 차는 무엇이 있을까? 하나의 조건이 맞으면 다른 조건이 맞지 않아 갈팡질팡 고민하던 그 때, 몇몇 지인의 조언으로 무쏘를 구매하게 되었죠.

 

20년 가까이 도로를 누빈 녀석은 낡았지만 여전히 튼튼했습니다. 땡볕에 달구어진 채 구매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곧 폐차될 처지였던 무쏘와 차를 구매하지 못해 여행을 시작조차 못할 처지에 놓여있던 우리가 만난 것은 어쩌면 운명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청량한 러시아를 기대하며 여행을 준비하던 우린, 예상치 못한 오토바이 사고로 어쩔 수 없이 출발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회복을 마침과 동시에, 부랴부랴 월동준비를 한 뒤 10월의 마지막 날 드디어 눈 내리는 러시아로 향했습니다.

 

 

“유라시아 횡단의 시작, 러시아 그리고 오프로드의 매력”

 

 

배 멀미인지, 여행에 대한 설렘인지 모를 24시간의 울렁임 끝에 도착한 블라디보스톡. 낯선 문자와 건물, 흰 피부의 사람, 처음 보는 자동차가 거리에 가득한데 여전히 저는 한국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앞으로 자동차를 타고 여행한다는 사실, 단어 하나 모르는 러시아에서 그 여행을 시작한다는 사실이 어쩐지 남의 일 같았죠.

 

낯선 땅에서 홀로 첫걸음을 시작했던 지난 두 번의 장기 여행과 달리 지금은 연인이 함께하기 때문일까요. 혼자 마주했더라면 두려움, 걱정, 설렘 가득했을 첫 발걸음이 익숙하고 두려움 없는 것은 아마 오로지 그 이유였을 터. 식료품을 사러 간 가게에서 꼬부랑 글씨가 쓰인 물건들 사이 가끔씩 한글로 적힌 물건들이 고개를 빠꼼히 내민 것을 보고서야 해외에 체류하고 있다는것이 조금씩 실감 났습니다.

 

 

우리의 첫 여행지는 블라디보스톡의 루스키 아일랜드. 섬으로 가는 길에 주유를 했는데 디젤이 뭔지 몰라서 헤매고, 셀프 주유하고서는 주유 뚜껑을 안 닫고 출발해 가던 길을 되짚어가며 주유 뚜껑을 겨우 찾았습니다. 여행을 시작한 첫날부터 사건이라니! 앞으로 잘 다닐 수 있을지 걱정이었지만 한 편으로는 즐거웠죠. 이 모든 것이 나중에 추억으로 기억 될 에피소드가 아닐까요?

 

 

작은 에피소드에 깔깔 거리며 도착한 루스키 아일랜드에서는 오프로드 일색이었지만 다행히 무쏘는 오프로드에도 끄떡없이 날아다녔습니다. 오래된 녀석이라 사실 걱정이 있었는데 조금 안심이 되었죠. 우리는 섬에서 무작정 달리다 무장 군인을 만나 긴박한 후진도 하고, 배멀미 같은 차멀미도 했습니다. 오프로드 탐험에 신났던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루스키 섬에서 하는 낚시 같은 여유는 즐기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 힘들었을 풍경들을 많이 마주했기에 만족했습니다.

 

루스키 섬에서 오프로드에 한껏 자신감이 붙은 우리들은 다른 도시로 향하며 달리다가, 눈에 띈 이름 모를 한 호수에 집착했습니다. 이름도 모르고 인터넷에서 찾아도 별다른 후기조차 보이지 않는 그 호수를 향해 눈 내리고 언 오프로드를 질주했죠. 그렇게 지도에도 없는 길을 가던 우리는 길바닥에 아주 처참히 쳐박혔습니다.

 

 

처음엔 정신 못 차리고 웃다가, 한시간 넘게 씨름해도 흙탕물만 잔뜩 뒤집어 쓴 채 그대로인 상황이 계속되자 우리는 패닉에 빠졌습니다. 준비해 간 트랙보드도 소용이 없었죠. 네바퀴 모두 물 속에 동동 떠 있는 상태였기 때문. 마지막으로 차를 본 것이 약 7km 전인데 과연 아직 그 자리에 차가 있을지, 차에 사람은 있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결국 저는 남아 차를 지키고 남자친구는 눈발 흩날리는 들판을 달렸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사람을 만나 작은 차로 견인을 하니 쏙하고 빠져나오는 무쏘. 허탈함과 안도감이 함께 밀려왔습니다. 이건 공개적인 비밀인데 남자친구는 달려가 눈물, 콧물 줄줄 흘리며 도움을 청했다고. 어휴, 귀여워.

 

 

“끊임없는 사건의 연속, 그럼에도 즐거운 로드트립의 묘미는?”

 

 

사건은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치타에 도착할 때까지 창문도 털썩 떨어지고, 타이어도 터지고. 우리 일은 아니지만 다른 여행자는 자동차에 도둑도 들었습니다. 밤새 습기 가득 쌓여 꽁꽁 얼어버린 창문을 무신경하게 열었다가 그만, 쿵하고 밑으로 떨어져버렸습니다. 한창 달리던 도중이었는데 얼마나 당혹스럽던지. 이대로 칼날같은 시베리아 바람을 맞으며 달려야하는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군가! 바로 어제 흙탕물에 자동차를 담궜다 빠져나온 사람들이 아닌가? 차를 세워 문을 분해했고 끝끝내 우리는 승리…가 아니라 고쳐냈습니다. 타이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프로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상태의 국도를 계속해서 달린 탓에 타이어가 납작하게 퍼지고 말았습니다. 타이어 구멍 메우기를 글로 배운 우리는 해가 다 질때까지도 구멍 메우기에 실패했고, 결국 타이어를 교환하고 분리된 타이어를 겨우 메웠습니다. 그 사이 수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겠다며 거쳐 갔지만 누구도 성공한 이는 없었죠. 역시 주유도 셀프, 정비도 셀프! 우리는 이렇게 1일 1사고를 체험했지만, 그럼에도 로드트립과 오프로드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무쏘로 만난 운명같은 여행, 그리고 운명같은 인연”

 

 

러시아 여행 전반기에서 예상치 못한 행복한 추억을 꼽으라면 바로 하바롭스크에서의 인연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어둠이 내린 하바롭스크에 도착한 우리는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성당 앞에 자리 잡아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우리와 같은 자동차 여행자로 추측되는 차가 지나다가 멈춰섰습니다. 카우치서핑 호스트인 부부와 게스트였던 여행자 두명이 차에서 내려 우리에게 동행을 제안했고, 버너에 불도 잘 안 붙는 추위에서 식사 준비를 하던 우리는 쏜살같이 짐을 정리하고 따라나섰죠.

 

식탁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밤늦도록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비록 언어가 달라 말은 서툴렀지만 서로의 삶에 대해, 여행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야기는 온기가 되어 주방을 가득 채웠습니다. 이튿날 아침, 밤을 함께했던 여행자의 차에 도둑이 든 것을 보고 호스트 부부는 신고부터 도둑맞은 물건을 찾을 때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죠.

 

 

이렇게 하룻밤의 인연이 이틀, 삼일이 되어 우리는 매일 그들의 집에 다시 모였고 우리는 그들에게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사진을 선물했습니다. 우리가 함께 찍은 사진과 더불어 부부에게는 부부와 그들의 아기 사진을 선물했습니다.

 

작다면 작은 선물이지만 그들은 우리가 준 사진이 자신들에게 하나의 특별한 추억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얼마 전 아기가 돌이었는데 아기사진은 4개월 때 이후 찍은 적이 없어, 우리가 선물한 사진이 돌 사진이 된 셈이었죠. 아기의 엄마는 감상에 젖어 앨범을 꺼내며 사진을 하나하나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눈시울을 붉혔죠.

 

얼마 전에 아이 생일이었는데 사진 한 장 못 찍었다며 고맙다고 말하는 통에 나까지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이 가족에게 적당한 선물을 줄 수 있어 감사한 마음과 더불어 선물을 좋아하는 그들을 보는 기쁨을 선물로 받아갔습니다. 물건을 도둑맞고 찾기까지 분노와 기쁨을 함께 나누었던 여행자들과 또 한 가지 특별한 기억을 공유하는 인연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연은 이렇게 시작되어 아직도 이어지고 있죠. 많은 고생(이라 쓰고 자업자득이라 읽는다)에도 여행을 계속하게 만드는 것은 이러한 인연을 기대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설렘과 부푼 기대, 몽골로 향하다”

 

 

사건에 울고 사람에 웃으며 조금 지루한 풍경들을 지나 도시를 여행하던 우리가, 몽골로 향하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도시는 울란우데. 이곳은 몽골과 가까워 많이 닮아있었습니다. 그리스 정교가 국교였던 나라, 현재도 70%가 그리스 정교 신자인 러시아에서 불교 색이 가득한 이 도시는 이방인인 제게는 매우 낯설었습니다.

 

 

이제야 조금 익숙해진 흰 얼굴의 사람들은 줄고 8년 전 몽골에서 보았던 볼 빨간 푸근한 얼굴이 많이 보였습니다. 그건 이곳이 몽골 민족의 조상, 브리야트 족이 모여 사는 곳이기 때문이었죠. 국경에서도 이렇게 몽골 문화가 보이는데, 몽골에서 마주하는 온전한 그들의 문화는 어떠할지. 그리고 8년 전 보았던 순박한 그들을 여전히 볼 수 있을까… 설렘과 그리움을 안고, 무쏘와 함께 몽골로 출발했습니다.

 

무쏘와 함께하는 유라시아횡단기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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