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기업은 그들만의 창업 스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버드대학교의 학생 명부를 훔쳐 만든 웹사이트에서 시작된 페이스북, 생일파티 영상을 올릴 곳이 없어 만들게 된 유튜브, 숙박할 곳이 없어 직접 숙박공유 사이트를 만든 에어비앤비 등 기업들은 매력적인 창업 스토리로 사람들에게 브랜드의 가치와 정신을 전하곤 하는데요. 얼마나 매력적인 이야기를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 브랜드에 대한 호감도가 크게 달라지기도 합니다. 국내에도 이런 매력적인 스토리를 가진 기업이 있습니다. 24세 청년이 미군이 버리고 간 폐차들을 수집해 연구, 개발한 결과 스스로 자동차 제작까지 하게 된 놀라운 이야기. <서프라이즈> 이야기냐구요? 바로 쌍용자동차 이야기입니다.
무쏘, 코란도, 렉스턴, 티볼리 등 대한민국 대표 사륜구동 SUV 회사인 쌍용자동차가 24세 청년의 손에서 시작된 회사라니. 지금으로선 상상도 되지 않는 모습입니다. 심지어 다른 국산 자동차 브랜드보다 10년 먼저 해외 수출까지 이뤘으니 그 놀라움은 쉽게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하동환의 이야기에 조금만 귀를 기울여보면 흥미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24세 청년 하동환, 미군이 남긴 폐차를 뜯어 자동차를 만들다”
한국전쟁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1954년 1월, 청년 하동환은 미군이 남기고간 폐차를 뜯어내 직접 자동차를 제작합니다. 전쟁이 할퀴고 간 당시 대한민국은 경제발전은 커녕 국민들의 생존과 기본적인 의식주를 걱정해야 할 처지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차의 신기함과 편리함이 앞으로 사회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킬 것으로 본 청년 하동환은 자동차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폐차된 미군 차량을 수집하고, 조사하고, 뜯어보고, 연구하며 자동차 만들기에 혼신의 노력을 다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직접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하죠. 바로 ‘하동환 자동차 제작소’의 시작입니다.
하동환의 창업 이야기는 마치 명품 스포츠카 람보르기니의 창업 스토리를 떠올리게 합니다. 람보르기니는 세계 2차대전 이후 군용품을 모아 트랙터를 만들며 시작했는데요. ‘하동환 자동차 제작소’의 시작 또한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는 미군 트럭에서 떼어낸 엔진과 변속기, 드럼통 철판을 입혀 버스를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합니다. 전후 공공 인프라가 필요했던 국내 상황에 꼭 필요한 자동차였기에 그가 제작한 버스는 ‘하동환 자동차 제작소’를 널리 알리는 계기이자 훌륭한 성장 동력이 되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 24살,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서울 시내 버스의 70%가 그의 손에서 태어났을 정도”
1950년대 이후 사람들의 거의 유일한 대중교통수단은 버스였습니다. 한 번에 많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이동할 수 있어 매력적이었죠. 버스는 인기가 좋은 교통수단이었지만 당시 국내에선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이렇다할 공장이 없어 그 수가 많지 않았습니다. 항상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었죠.
버스 제작을 통해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자동차를 생산해 내던 ‘하동환 자동차 제작소’는 설립이 채 10년이 되지 않은 1962년, ‘하동환 자동차 공업 주식회사’로 한 단계 더 높은 성장을 하게 됩니다. 창업 당시 마포구에 위치했던 작은 창고는 구로동 2천평 규모의 국내 최초 버스 전문 공장으로 규모를 넓히게 되었죠.
하루 평균 2대씩을 생산할 수 있었던 조립 라인 또한 변화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최고 설비를 갖춘 공장의 생산 라인과 각 전문가들의 손길로 탄생한 ‘하동환 자동차 공업’의 버스들은 국내 버스 업계를 장악하게 되는데요. 1960년대 서울 시내 버스의 70%가 하동환 자동차 공업의 버스였다는 사실을 보면, 당시 버스 제작에 있어 그 양과 질, 모든 측면에서 얼마나 앞서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기업의 성장과 대중교통 인프라 확대에 큰 기여를 한 하동환은 그 공을 인정받아 1965년 12월, 전국 모범기업체 표창대회에서 교통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합니다.
“직접 차체 설계, 제작한 자동차로 10년 먼저 수출… 국산차 우수성 알린 기념비적 사건”
미군 폐차에서 조립한 첫번째 자동차, 하동환 자동차 제작소의 설립, 그리고 국내 버스 시장 점유. 청년 하동환의 열정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1966년, ‘하동환 자동차 공업’은 국내 자동차 역사상 가장 의미있는 사건(?)을 만들게 되는데요. 바로 국내 제작 차량의 해외 수출 성공입니다.
1966년 5월, ‘하동환 자동차 공업’은 동남아 석유 부국인 브루나이에 HDH R-66 버스를 수출합니다. HDH R-66은 사이클 디젤엔진을 뒤에 얹은 일본 닛산 샤시를 도입, 차체는 하동환 공장에서 설계, 제작한 차량이었죠. 이는 단순한 최초 수출 기록, 그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 기술이 가미되어 차체를 설계, 제작하여 완성한 자동차를 해외에 수출했기에 한층 더 수준 높게 진보한, , 그리고 혁신적인 국내 제작 기술력을 갖췄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의 기념비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기록입니다. ‘하동환 자동차 공업’은 이후 우리나라 최초로 대형 버스를 베트남과 리비아 등에 수출하면서 국내 자동차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일조합니다.
전후 혼란했던 대한민국 한 켠에서 24세 젊은 청년의 도전은 ‘역사상 최초의 국산차 수출’의 쾌거를 이뤘고, 그의 열정은 지금의 쌍용자동차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청년의 꿈은 쌍용자동차의 날개가 되었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자동차의 흐름도 변했지만 쌍용자동차 한 켠에 남아있는 변하지 않는 것 하나, 바로 그가 남긴 국산차에 대한 열정과 노력이 아닐까요?